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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름 마을소개

매화마름 마을소개
초지1리 초지진이 있는 호국마을이야!
강화외성
(토성)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1233년 해안방어를 위해 적북돈대부터 초지진까지 23km에 걸쳐 쌓은 성. 사적 제452호.
김영우 시혜 불망비 김인회의 증조부이며 주위에 은혜를 베풀어 은인 24명이 1920년 기념비를 세움.
나들길 8코스. 갯벌생태체험을 할 수 있음.
매화마름군락지 2008년 10월 13일 람사르 습지로 지정(이 과정에서 사재구 씨가 논습지 일부를 기증), 미나리아재비풀과인 매화마름은 1960년 이후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98년 강화에서 발견되어 보존운동 시작, 면적 3,015㎡의 논습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매입 후 주민합의를 거쳐 논습지로 관리.
석수문 외성 축조 당시 물조절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현재 2개 중 하나만 남음.
소황산도 황산도 서남쪽에 있는 작은 섬이었으나 지금은 제방을 쌓고, 간척을 하여 육지화 되었음.
짚풀공예 목공예체험 마을주민이 전통공예품을 살리기 위해 함께 전수활동을 하고 있음.
초지진 사적 제255호 1656년 효종 7년에 외적을 막기 위해 구축. 1866년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 1871년 무역을 강요한 미국의 아세아 함대, 1875년 일본의 운요호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곳.
초지포구 어판장 직업 어획하여 판매. 농어, 숭어, 새우젓, 실뱀장어 등.
충신문 진주 강씨인 고려 충신 강흥업을 기리는 문.
황산도 장자말 동남쪽에 있는 섬이었으나 매립하여 육지화 되었다. 예전에는 황산포대가 있었다.
황산도 어판장 직업 어획하여 판매. 농어, 숭어, 새우젓, 실뱀장어 등.
초지2리 자리가 넓게 앉아서 농산물이 풍부해~
감탁골 초지2리 서쪽, 장자말 서쪽에 있는 마을. 관택골 무사들의 관사가 있던 곳. 초지리 평야가 넓어서 훈련하기 좋았다고 함.
넓은 농토 간척사업으로 땅이 넓어져 농사를 많이 지음. 고추, 쌀, 인삼, 참외, 고구마, 순무 등 대량 생산.
당재 사슬재 상봉에 위치함. 기우제 지냄. 황용골 꼭대기.
신명서당 1900년에 성공회에서 설립 1대교사 조경규 선생, 2대교사 김용옥 선생, 2대 조용춘 선생이 많은 학생을 가르쳤음. 신명강습소로 개명되어 배우다 길상국민학교 입학하는 것이 마을 어린이들의 관례였음.
어정포 물고기들이 산란하던 곳.
인물 조동재 의학박사, 이중재 변호사, 김용호 중령 등.
자염(본염) 자염은 바닷물을 가마솥에 끓여서 만든 소금, 초지2리(들머리)에 2~3백년 전에 염벗이라고 바닷물을 끓이는 터가 12속 있었다.
장안말 예전에 성을 쌓고 말을 길렀다하여 장안말이라 하였다. 일설에는 온수리장터 안쪽의 마을이라하여 장안말이라 부른다고도 했다.
장자말돈대 장자말 동남쪽에 있는 돈대.
토저골
들머리 포구
배가 한강에 들어가기전에 들러던 포구. 삼별초 군인들과 별무사 어선 등이 드나듦. 그 후 가마니를 수송하던 곳. 포구 위쪽에는 짚으로 새끼를 꼬아 배의 닻을 감싸던 곳이 있었다. 수철구는 닻을 감싸기 위한 동아줄을 만들던 곳.
토저골 백토 도자기 흙이 많음.
토저마을,
장자마을,
신촌마을
토저말은 초지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토성을 쌓아 민폐를 적게 하고 말을 기르던 곳이라 한다. 신명학원, 성공회 등 최초설립. 장자말은 장자평돈대 경주부리 초지진까지 성뜰. 장자촌 부자가 살았다고 함. 신촌마을은 황산도 서북쪽 새로 된 마을로 실향민이 자리를 잡아 새로 마을을 이루었다. 이북 피난민 살던 곳.
황용골고개 토저골에서 웃장안으로 넘어 다니는 고개. 토저골 뒷산.